쇼팽이 피아노 작품을 쓸 때 가장 염두해 두었던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cantabile. Cantabile는 노래하듯, 이라는 악상기호인데 쇼팽은 늘 노래하는 듯이 화성이 흐르도록 세심한 배려를 해 가며 곡을 썼다.
쇼팽이 늘 cantabile를 생각해 가면서 곡을 창작해서인지—비록 감정의 약한 부분을 자극하기는 하지만—그의 작품은 대체로 아주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을 지니고 있다. 또한 쇼팽 특유의 신경질적인 선율도 전혀 비약적이지 않고 오히려 인간 본연의 연약함을 승화시킨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쇼팽의 작품관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의 곡은 매우 중독성이 강하다.
그리고 나는 그토록 천재적인 쇼팽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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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천재들의 대작들을 접하다보면 가끔씩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있는 삶인가?”라는 물음에 도달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어제 광호형과 경민이 누나와의 술자리는 즐겁고도 의미있는 자리였다—Thanks, 광호형 & 경민이 누나!
나도 어서 빨리 내 생각의 큰 기준을 잡을 수 있었으면 한다.
단편적인 것들에 대한 단편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이 때로는 맞을 때도 있고 효과적일 때도 있지만 나중에 여러개를 모아놓고 보면 앞뒤도 맞지 않고 내 생각에 내 발목이 잡히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이러한 미성숙한 모습을 빨리 졸업하고 내 생각의 큰 기준을 잡고 싶다. 내가 진득하게 붙어있을만한 잣대를 확립하고 싶다.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큰 인물이 되고 싶다.




